본문 바로가기

비만

(4) 뚱뚱한 사람도 키작은 사람처럼 루저가 아니다

2주에 한번씩 연재를 하기로 하고는 꽤 오래동안 연재글을 쓰지 못한 것에 사과드립니다. 몇몇 분들이 언제 다음편이 올라오느냐 물어봐주시기도 하시는 등 관심을 보여주셨지만, 세월호 참사로 무고한 300여명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인재로 유명을 달리하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펜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비만이니 뚱뚱하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라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다시금 간절히 바래봅니다.

지난 주에 SBS 스페셜 에서는 ‘비만이 역설: 뚱뚱한 사람이 오래산다’를 방영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제가 여기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연재하고 있는 글의 요지 중에 하나인' 비만의 역설 (Obesity Paradox)' 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뚱뚱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오래 살고, 건강할 수도 있다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제가 연재 글의 서두에 간단하게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제 연재글의 속도를 조금 높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 분야에서 먹고사는데… 선수를 뺏기면 곤란하니까요. :-)


지난 번 글인 '뚱뚱한 사람은 인격이 훌륭하다' 에서는 SBS 스페셜에서 처럼 BMI로 인한 비만의 구분의 문제성을 제기했고, 과체중이나 비만인 사람의 건강이 오히려 좋은 결과들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체질량지수를 결정하는 키와 몸무게는 어느정도 타고나는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키와 뭄무게에 대해서 사람들이 대하는 시선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서울 시내를 걸어다니면 수많은 비만클리닉 광고판들을 보게 되지만, 키 크는 클리닉 광고판은 볼 수가 없습니다. 암암리에 우리는 키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몸무게는 어떻게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009년 11월에 KBS의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여대생이 “키 180 이하의 남자들은 루저’라는 발언을 하여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여대생은 저 발언으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키가 작은 사람들을 폄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이 어느정도 타고나는 유전적 요소에 기인하기에 그것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부당하다 라는 인식을 우리 사회가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졸지에 루저가 된 저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라인에서 저 여대생의 신상털기와 사생활이 폭로되고 도가 넘은 비난이 폭주했던 것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출처: http://news.donga.com/Society/3/03/20091112/24055857/2&top=1



그런데 저의 일관된 주장인, 몸무게도 키와 마찬가지로 어느정도는 타고난다 라는 논리에 따르면, 뚱뚱한 사람에 대한 차별도 마찬가지로 부당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키에 비해서 몸무게에 대해서는 그리 관대하지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두 달 전에 제가 우연히 읽게된 ‘교회의 비만, 초기증상 감별법’ 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한 목사님이 글인데, 전반적인 글의 요지에는 저도 200%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지적하는 건강하지 않음을 비만으로 규정하는 것이 무척 거슬렸습니다. 게다가 그 칼럼에서 비만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증상은 실제 연구와도 좀 다릅니다. 오히려 비만한 사람이 발병률이 적기도 하고, 오래 살기도 하며, 다른 질병에 대한 저항성도 강하다는 연구도 허다하게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만하면 건강에 나쁘고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도대체 어디서 왔던 것일까요? 그것은 비만과 뚱뚱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입니다. 비만하고 뚱뚱한 사람이 이 글을 읽었을때 과연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본질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은 루저' 라는 발언을 키가 작은 사람이 읽었을때와 동일한 느낌일 것입니다.


키와 몸무게가 어느정도 타고나는 것이라면, 키와 몸무게로 계산하는 체질량지수 (BMI)로 구분한 비만도 어느정도 타고나는 것입니다. 타고나는 것을 건강하지 않거나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부당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만하면서도 건강하게 오래산다는 많은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저 칼럼에서 말하는 비만 = 건강하지 않음을 문제삼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만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은 비만이 건강하지 않음을 넘어서서, 정상이 아닌 상태로 규정하고, 비만하고 뚱뚱하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차별하기는 근거로 작동되기도 합니다.


뚱뚱한 사람이 서양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뚱뚱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 도가 지나칠 정도일 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공공연히 용인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뚱뚱한 사람은 차별받는 소수자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한 행위가 아닌 타고나는 것으로 차별을 받는 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뚱뚱한 사람들은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며, 게으르고, 무능하거나 절제가 없는 사람의 이미지로 ‘당연하게’ 인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대놓고 표출하면서 전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남의 시선에 특별히 민감한 10-20대에 뚱뚱한 사람이 한국에서 사는 차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뚱뚱한 사람앞에서 뚱뚱해서 재수없고 보기싫다 라는 이야기를 대범하게 막 할 수 있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제가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뚱뚱하고 싶어 뚱뚱한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대부분의 사람이 비만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과 부당함에 대해서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키가 작은 사람은 루저’와 같은 맥락의 부당함입니다.


평생을 비만으로 살아오다가 10여년전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되었을때. 저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로워 졌던 것을 느낀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보다 훨씬 뚱뚱한 사람이 많았기에 제가 '비교적' 날씬하게 보이는 것도 있었고, 더 이상 옷가게에서 트리플 엑스라지를 찾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미디움을 뜻하는 M사이즈의 옷이 맞았던 적도 있어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뚱뚱하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를 뚱뚱하다고 따갑게 쳐다보는 시선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제 몸무게를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미국에는 물론 정말 어마어마하게 뚱뚱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에 대해서 수근수근 거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키와 뭄무게가 어느정도 타고나는 것이라면 뚱뚱하다는 것도 키가 작은 것과 마찬가지로 차별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키가 작은 사람은 루저' 발언의 어마어마한 논란에 비해 비만이나 뚱뚱한 사람에 대한 차별과 폄하는 공공연히 전 사회에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젊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목숨을 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뚱뚱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일 뿐더러 게으름과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의 표상이니까요. 뚱뚱한 사람이 입사나 승진에 불이익을 당한다거나, 뚱뚱한 사람이 소파에 누워 TV를 보면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뚱뚱하지 않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연구결과도 어디에서인가 본 기억이 납니다. 



제가 쓰는 연재 글의 결론 중에 하나는 ‘비만이거나 뚱뚱한 사람이 건강할 수도 있다’ 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뚱뚱한 사람이 더 오래살거나 건강하다라는 연구결과는 어느정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몸무게가 키와 같이 어느정도 타고 난다면, 왜 세계는 갈 수록 뚱뚱해 지는 것일까요? 저도 미니시리즈 드라마처럼 한번 여기서 끊고 다음편을 기대하게 만들어 봅니다. :-) (계속)


*이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