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으로 젊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작을 앞에 두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몸으로 살아 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은 당신의 가슴속에 삶을 특별히 행복하고 순수하게 짓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쪽을 향해 매진하십시오. 그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모든것들을 커다란 신뢰로 맞아들이도록 하세요. 그것들이 당신의 의지에서 나올 때, 즉 당신의 내면의 어떤 욕구에서 나올 때에는 그것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
A교수는 나에게 차가웠다. 어느날은 나를 불러 대놓고 이야기했다.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겠느냐고… 그냥 석사만 받고 나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나는 그때 만큼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이미 석사가 있습니다. 두개의 석사는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석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박사를 하러 왔습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려왔다.
깊은 밤이었다. 나의 몸은 침대위에 뉘여져 있었다. 밤이 새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하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몇 시간 동안,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얗게 밤을 지새고 학교로 향하곤 했다. A 교수의 방문앞을 지나야 내 오피스가 나오는데, 나는 일부러 돌아가는 길로 오피스에 들어갔다. 학교에서는 늘 A교수를 안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어디선가 A 교수의 목소리만 들어도, A 교수의 모습이 먼발치에서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A교수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웃고 있는 모습만 봐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걔는 졸업할 수 있겠어?'
'갠 영어도 못하는데 수업시간에 따라오기는 하는 거야?'
'수업도 잘 못따라가는 같던데, 여기 박사과정엔 어떻게 입학했데?'
졸업에 필수적인 A교수의 수업을 다 들어서 더 이상 A교수을 보지 않아도 될 줄 알았지만, 그 사람은 대학원 디렉터였기 때문에 학기초와 말에 항상 나의 학업을 체크하고 또 심사했다. 그때마다 그 사람은 나를 냉정하고 차갑게 그리고 자비라고는 전혀 없이 대했다. 나는 그 사람이 무서웠다. 나는 A 교수와 만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으려고 했고… 가급적 학교에 나가는 것도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의 모든 교수와 모든 선후배들… 나중에는 학교의 모든 사람들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졌다. 그러다 보니 공부는 커녕…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그 두려움… 내가 쫓겨날지도 모른다의 공포는 실제가 되어 밤마나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잠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기도를 해도 해도 두려움과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서 쫓겨나면 어떻하지? 펀딩이 끊기면 어떡하지? 장학금이 끊기면 공부를 그만두어야 하나? 정말 석사만 받고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내가 여기서 공부를 그만두어 버리면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거지? 모든 걸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부모님, 친구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안해님과 아이들을 내가 계속 돌볼 수 있을까? 나는 재주도 기술도 특기도 없는데… 앞으로 무얼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지?’
그렇게 오래 괴로워하고 기도만 하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아니 기도가 아니라 걱정을 하는 시간이었다. 분명히 기도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나는 걱정을 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변하는 것은 없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침대위에서 내 영혼이 괴로워하는 것이 매일매일 느껴지는 적막같은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 둘 수도 없고… 쫓겨날 것 같은데 아직 쫓겨나지 않은 어정쩡한 시간들, 순간들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걱정과 염려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느 날 이었다. 하나님은 내게 이런 생각을 주시는 것 같았다. 그것은 A교수가 나를 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A교수가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아주 바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인생이 따로 있으며, 하루 24시간 중에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1분은 커녕 1초도 안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A교수의 삶에 전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A 교수는 나에 대해서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A교수가 주변이 사람들과 웃으며 하는 이야기들은 나를 비난하고 흉보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나에 대해서 생각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에 대해서 생각해 주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만약에 내가 유학에 실패하여 학위를 받지 못해도, 그래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도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물론 잠간 나의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정말 잠시이고 잠간이며... 나의 실패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큰 의미가 되지 않을 뿐더러 곧 잊혀질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그리 중요하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내가 A교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고, 공부에 실패해도 두려워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A교수는 나에 대해서 생각 자체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 날 이후, 내 오피스를 가게 될 때 마다 지나치게 되는 A 교수의 오피스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방문의 노크를 하고 꼭 인사를 했다. 특별한 다른 말도 없이 그냥 인사만 했다. 그리고 꼭 미소지었다. 더 이상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꼭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인사하자 그들도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더 이상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한 생각 자체를 거의 하고 있지 않았다.
학기 초와 말에 대학원 디렉터인 A 교수와의 미팅에서도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공손히, 하지만 내가 해야할 말들을 준비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늘 고맙고 감사하다 라는 말을 말꼬리 마다 붙였다. 생각보다 A교수가 나를 그렇게 미워하고 나쁘게 보는 것 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A 교수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더 이상 두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잠을 잘 수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집중해서 할 수 있었다. 조금씩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 전공분야의 가장 큰 권위의 학회에서 상을 받아왔다. 우리학교 대학원생이 그 상을 받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A 교수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권위있는 저널에 제1저자로 논문이 퍼블리쉬가 되었다. 재학생으로 쉽지않은 업적이었다. A교수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박사를 받고 졸업도 하기 전에 교수가 되었다. 우리학교 대학원생이 졸업도 하기전에 교수가 된 것도 처음이었다. A 교수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결국 마지막 논문디펜스를 마치고 모든 커미티 교수님들로 부터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커미티 중에 한 사람이었던 A 교수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엷게 웃으며 내게 다가와 가장 먼저 '축하합니다, 닥터 남' 이라 불러주었다. A교수는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도 A 교수가 나에 대해서 여전히 거의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A 교수를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A 교수 뿐만 아니라 거의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내가 염려하는 것 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서 하루에 5분 이상 생각해주는 사람은 안해님 한분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안해님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도 없고, 그리 잘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나의 일을 하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성공하던, 실패하던, 잘 되던, 못 되던지 나에 대해서 그렇게 오래 관심을 두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되었다.
나의 힐링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이루어진 것 같다.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자유롭게 해주셨고, 나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 것인가만 신경쓰면서 그저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다행히 나를 흉보지 않으시는 것 같았고 내가 하는 것 이상의 결과들을 늘 함께 해주셨고, 늘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다. 나아가 나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도 자유해졌다. 하나님은 나를 늘 동일하게 내 중심을 꿰뚫어보시기에, 내가 나를 치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긴대로 살기로 했다. 누구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중요하게 남이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주어진 나의 삶을 그저 걷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주변이 나를 어떻게 보는 지 신경쓰지 않으므로 내가 조금 주변을 신경 써보고 싶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이제 가을인가 보다.
*한국리더십학교 뉴스레터 2013년 8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http://is.gd/1LOJiD
'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보다 낯선...... (0) | 2019.09.15 |
---|